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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일기/사원 일기

[사원 일기] 2020년을 마무리하며

by Gnuz 2020. 12. 31.

1.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끝이 납니다.

   아홉수는 그저 불행해서가 아니라, 다음의 십 년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올해 내가 불행하였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무언가의 계기가 되기를.(정신승리)

2020년 마지막 야근

2. 올해의 키워드

   2020년의 키워드는 단연코 "COVID-19,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힘든 시기이고, 현재 진행 중이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올해의 키워드는 '퇴사'입니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였고(사실 COVID-19은 핑계였다.), 많은 분들이 퇴사하셨습니다.

설계직 300분 중, 약  100분 이상이 퇴사하셨는데, 그중 70%가 자발적인 퇴사였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업무량은 월등히 많아졌고, 야근은 밥먹듯이 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덕분에, 퇴사하겠다고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습니다..

기록적인 퇴사율

 

3. 꾸준함이라는 것에 대하여

   해가 지나며, 제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신입사원 시절에, 업계의 보수적인 문화에 질려버리며 탈설계, 탈건축도 많이 고민하였고,

실제로 돈도 내가며 타업종의 교육도 이수하였습니다.

회사가 어수선한 시기에, 윗분들이 말씀하시는 정치적인 이유로 팀이 좌천이 되며,

근 반년은 회사 내에서 업무가 없어 출근하면 멍하니 있다 올 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시기가 늦봄~가을 정도였는데, 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자기 계발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왜 건축설계업에 종사하고 싶었는지가 첫 번째였습니다.

저는 도시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적, 신문을 읽다가 현재가 타계하신 '명지대 고(故) 김석철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2000년 초라고 기억을 합니다만, 당시 인천에 '한국의 베니스'를 만들겠다는 기사였고 주도하시는 계획가가 김석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때, '도시'라는 단어가 저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도시 안에 살면서도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도시라는 것은 익숙하게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누군가가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도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더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나는 나중에 '도시설계가'가 돼야지, '도시계획가'가 되야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을 갈 때쯤에 알아보니, 우리나라의 도시설계학이나 도시계획학은 매우 열악하였습니다.

전후 도시개발의 목적으로 학문이 진전되다 보니,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타 선진국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과,

뭘 해도 먹고는 살아야지.. 평생 하도급으로는 못 산다!라는 어리지만 현실적인 마음으로 건축학과를 선택하며 도시설계의 꿈은

대학원으로 미루려 하였습니다.

 

 5년제 건축학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제 자신이 흔히 대중들이 이야기하는 '디자인', '센스' 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견주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관찰력과 눈치,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관찰력으로 교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캐치하여 눈치 있게 배치하고, 논리적으로 입 설계를 한다. 

건축학과 학생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졸업전시회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심사평은 '현실적이며 실제 있을법하며, 현업 종사자가 하는 프로젝트 같다'

저에게는 극찬이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실제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

 

 실제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 실시설계를 하는 것. 실제로 짓는 것.

내가 설계한 것이 실제로 눈 앞에 생겨나는 것은 그동안 5년의 학업기간, 훈련을 통하여 우리가 체득한 것입니다.

고학년이 되면, 제 자신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꿈은 '도시설계가'였습니다.

과거형으로 말했듯이, 변경되었습니다. 건축설계업입니다.

나름 꿈을 이루고 싶어 도시연구원에서 일도 해보고, 관련 세미나 등도 참여하였습니다.

짧게 줄이자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녔습니다. (나중에 길게 이야기해 볼 참입니다.)

그러면서,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하기로 결심하고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제가 하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산업시설입니다.

산업시설이라 하면, 공장, 팩토리, 플랜트, hi-tech 시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진행한 건축학 학사 졸업 설계 논문 제목이 '골목의 도시 조직을 재구성하는 구릉지 주거유형 제안 연구'입니다.

굉장히 도시적인 단어 선택이었습니다만, 골목을 다루던 건축학도는 졸업하고 공장을 계획하게 됩니다.

많은 건축학도가 졸업 후 생각지도 않는 분야입니다. 재미없고 따분하며, 지루하고, 그냥 하기 싫을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의 대가인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신승리를 하자면, Peter Behrens(페터 베렌스)도 베를린에 AEG 터빈 공장을 설계하고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작업에는 우리의 Mies van der Rohe (미스 반 데어 로에) 선생님도 참여하셨습니다.

AEG Turbin Factory, Berlin, 1908-1909 (Uploaded to Flickr on January 2, 1999 by rucativava, upload to commons by Wiiii on 3 Feb 2007.)

 자, 저는 미스의 후계자가 된 셈입니다.

참고로 Norman Foster 경이나 Richard Rogers 경 등 많은 하이테크 성향의 모던 건축가들은 산업시설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실제 짓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페이퍼 아키텍트는 저와 맞지 않습니다.

제 눈앞에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며 현재인 것, 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

건축설계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특히, 산업시설은 그중, 내가 하는 계획과 시공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Fast-track 공법이라고 합니다. 실시 설계와 시공이 함께 가는 것.

내가 오늘 작성한 도면을 퇴근하기 전 보내면 다음날 공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불법은 아니고, 관공서 및 발주처와 합의 및 허가하에 하는 일입니다.

시공사가 보내주는 드론 샷을 보면 가끔 징그럽습니다. 내가 계획한 위치 그대로 똑같은 입면의 모습을 가진

월드컵 경기장보다 더 거대한 건물 하나가 1년이면 만들어집니다.

 

 앞에서 신나게 이야기하였지만, 결국 건축설계업. 특히, 실시설계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지금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건설경기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내가 계획한 건물이 실제로 지어지는 것은 행운입니다.

애증에서 증의 portion이 더 큰 우리 회사지만, 현재의 회사에 근무하였기에 저연차지만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건축설계업에서의 꾸준함이라는 것. 그 의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건축가, Peter Zumthor, Mies van der Rohe, Taniguchi Yoshio, Renzo Piano 등 (한국 건축가는 없습니다.)

자신들의 길을 꾸준하게 가시는 분들입니다. 항상 설계 후 시공된 건물로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내 사무실을 차려, 내 이름을 걸고 50년 동안 건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어느 직종에서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고객이 만족하고 내가 만족하는 건물이 현실화된다는 것.

그것이 제가 건축설계업에 종사하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그 비결에는, 꾸준히 내 길을 걷는 것. 거장들에게서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젊은 혈기에 조급함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조급함은 잠시 미루고 꾸준하게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제가 힘든 시기에 남아도는 시간과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결론입니다.

 

모두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올해로 제 아홉수가 끝나기 때문에 내년에는 왠지 잘될 것입니다.

이런 눈치가 빠른 편입니다.